[곽명동의 독서일기]<소설 쓰고 앉아 있네> 작가 지망생이라면 반드시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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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sadora 작성일25-03-28 13:19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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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의 작가지망생 형태일을 마치려면 견고하게 움직여야 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탑을 쌓는 일이었다. 기초부터 촘촘히 벽돌을 쌓아 올려 이야기라는 형태를 빚어내야만 했다. 자판을 두드리며 손끝으로 활자의 형태를 느꼈다. 글에는 각자 모양이 있었다. 필자에 따라 각지게도, 때로는 둥글게도 변하는 모양새였다. 기정이 여태껏 쓴 글이 적어도 오십 개는 넘었다. 실로 다양한 곳에 작품을 출품해왔었다. 시부터 소설, 에세이까지 분야를 가린 적도 없었다. 수상은 언제나 불투명했다. 그보다 나은 사람은 너무 많았다. 혹여 운이 좋아 수상한다고 하더라도 미래는 확실하지 않았다. 가끔은 키보드 소리가 끝없는 지옥의 풍경에서 아스라하게 스며오는 신음처럼 들렸다. 글을 쓰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체념하는 시간 또한 함께였다. 언제나 희망은 배신감을 가져왔다.기정은 자신이 쓴 글을 여러 번 눈에 새겼다. 모니터를 넘어 그 형태를 기억해야 했다. 줄곧 어떻게 생겼나를 생각하고 살을 붙이기에 꼭 필요한 작가지망생 작업이었다. 처음 그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반대했었다. 글을 무슨 글이고, 일은 일이지 어떻게 취미를 일과 함께하겠느냐.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기정은 언젠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온 시집을 본 적 있었다. 안방 책장 가장 높은 줄에 거꾸로 꽂혀있는 얇은 책이었다. 요즘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많았다. 그때 그것을 다 읽었던가. 기정은 끝내 그것을 기억해 내지 못했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기정은 글을 저장하고 안경을 벗어두었다. 글을 쓸 땐 언제나 그것이 아득하게 먼 일처럼 느껴졌다. 끝내고서 출품한다는 것. 언젠가는 그 순간이 찾아왔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넘겼다. 어느 건물에 달린 파란색의 눈 아픈 네온사인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옆에 높이 들어선 전봇대에는 현수막이 이어져있었다. 누구를 끌어내고 누구를 올려야 한다는 내용의 작가지망생 선전문이었다. 그것들은 전봇대에 붙어있는 광고지만큼이나 자주 붙고 자주 떼어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파란색의 동네 버스는 기정을 낡은 건물과 계단이 즐비한 동네에 내려놓았다. 정답다고도, 촌스럽다고도 말할만한 동네였다. 기정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곳이기도 했다. 어떤 음식이나 거리를 내세워 유명해지는 지역도 많았지만 그곳은 아니었다. 자동차 매연 냄새와 잡초 특유의 축축한 냄새가 섞인 언덕을 오르면 아버지의 집이 있었다. 파란색의 양철 대문을 두드리니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기정은 든 게 별로 없어 가벼운 가방을 똑바로 정돈하고 집으로 걸어들어갔다. 옛날 그의 방으로 쓰이던 장소에는 각종 잡동사니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옛날 할머니를 만나러 가면 그런 방이 있었다. 어린 기정은 막연히 ‘혼자 오래 살다가 나이가 들면 저런 방이 생기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혼자 오래 살다가 나이가 들어버렸을까. 그는 생각했다. 둘은 기정이 사 온 케이크를 갈색의 끈적한 탁자 작가지망생 위에 올려두고 맞대어 앉았다. 오랜만이었지만 어색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아직도 글을 쓰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힘들겠지만 이렇게까지 와버린 이상 열심히 하라고 조언했다. 이렇게까지 와버렸지 않느냐는 그 단어가 어색했다. 이렇게까지 왔다기엔 이룬 것이 없었다. 당신도 글을 쓰며 이런 감정을 느꼈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스스로 자신이 글을 썼음을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기정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대신 가벼운 농담으로 말을 흘렸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많았다. 아버지의 글에 관해 말하고 싶었던 적이. 그러나 아버지의 눈에는 언제나 시에 관한 부끄러움과 수치가 스며있었기에 결과는 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옛날에 글을 썼었다. 아버지가 젊었을 땐 무언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경우는 그것이 시였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계속 글을 쓴 결과 사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소녀감성의 시집 작가지망생 하나는 건졌다고 했다. 아버지의 책장에는 시집이 정말 많았다. 젊을 적에 애지중지 모았지만 지금은 팔아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하는 처지라고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에 핵심이 사라졌다, 고 기정은 생각했다. 어쩌면 누구나 사랑하는 일을 묘사할 땐 그렇게 되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글을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넓게 퍼져버린 말을 꼭 좋게 끝맺어라,라는 말로 한데 모아버리곤 젓가락으로 케이크를 조금 파먹었다. 젓가락에 생크림이 조금 묻었다. 그것은 맛있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시는 각지고 뾰족한 글이었다. 모서리에 찔리면 피가 방울방울 배어 나올 것만 같았다. 읽기 힘든 글은 아니었으나 퍽 편한 글도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언덕을 내려왔다. 밤이늦어 자동차가 사라져서인지 매연 냄새는 좀 옅어져 있었다. 버스를 타고 커다란 다리를 지났다. 다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엔 걸어서 그것을 건너게 해주었었다. 아버지와 기정은 그곳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부족한 실력으로 찍은 사진은 작가지망생 꽤나 웃기게 나왔다. 지금은 바퀴로만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며 강을 바라보았다. 물이 흘러내리고 젖은 풀이 우거져있었다. 아버지는 글을 쓰지 말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어쨌든 그건 일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들렀었다. 가격 말곤 변한 것이 없었다. 어묵에 간장을 발라 입에 집어넣었다. 약간 뜨거웠지만 맛있었다. 옛날엔 어묵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묵의 식감이 마음에 안 들었었다. 시간이 지나며 입맛조차 변하고 있었다. 늙어가고 있는 건지 그냥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둘은 그저 같은 일인지도 몰랐다.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하기로 했다. 어른들은 시간아 가지 마라 같은 말을 달고 살았다. 주름살 사이사이에 시간이 끼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아버지에게 시간이 가는 것이 왜 그리 싫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작가지망생 잠깐 생각하고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은 지금보다 젊어 보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쌀쌀한 봄의 바람이 콧대를 스쳤다.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적막한 거리를 빠르게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지만 조급한 마음 때문인지 자꾸만 걸음이 빨라졌다. 가끔 추운 날이면 아무런 이유 없이 조급해지곤 했다. 거리엔 마사지숍과 노래방, 미용실이 나란히, 혹은 어지럽게 늘어서 있었다. 과하게 화려한 장식을 아무렇게나 세워놓은 가게가 많았다. 도를 지나쳐버린 장식은 오히려 지저분했다. 너저분해지기보단 지저분해지기를 택하는 가게가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을 열었다. 글이 쓰고 싶었다. 기정의 이름으로 쓰인 책이 출간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겨울의 일이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촌스러워 보이는 표지와 심하게 개인적인 내용 때문인지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는 가끔 농담으로 자신의 책을 나누어주며 땔감으로 작가지망생 쓰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서점에 가서 그의 책을 직접 검색해 보기도 했다. 대부분은 ‘재고 없음’ 이었다. 상관은 없었다. 아버지는 기정의 책을 아꼈다. 다음에는 진짜 찾아갈게요, 진짜로 갈게요, 하다가 결국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깨끗이 닦으며 기정은 약간 울고 싶었다. 그날 기정은 아버지의 시집을 다시 제대로 읽었다. 잘 썼다곤 할 수 없는 글이었지만 마냥 좋기만 했다. 기정은 문득 그러다 보면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아버지의 불콰한 목소리가 가끔 떠올랐다. 돈은 있냐. 살만하냐. 옛날과 달리 배고파야지만 예술가인 세상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돈이 없는 것은 사실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손목이 아팠으며 그것은 증표처럼 남았다. 이젠 네모난 액자 속에 담겨 부루퉁하게 기정을 쳐다보고 있는 아버지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소설가지망생 #작가지망생 #작가 #문학 #글쓰기 #글 #습작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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