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시청역. 홍윤기 기자 서울 시민의 발 역할을 하는 지하철. 그 지하철을 운전할 수 있는 서울교통공사 승무직은 기관사를 꿈꾸는 취업준비생에겐 ‘꿈의 직장’으로 꼽힙니다. 블로거 A씨는 서울교통공사의 직원인 데다 각종 철도 관련 면허나 채용 관련 기출문제를 모아둔 터라 기관사 지망생들 사이에선 ‘1타 강사’로 통했습니다. 전체 방문자 수가 50만명에 달했습니다. ‘개인 정보와 수험표 인증을 하면 더 많는 족보 자료를 주겠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이 직원, 개인정보만 요구한 게 아녔습니다. “속옷만 입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맞는 모습을 카메라에 비춰라”는 취지의 요구를 받았다는 피해자들이 등장한 겁니다. “무료 상담을 해주겠다”며 페이스톡을 켜게 한 뒤 A씨는 돌변했습니다. 당황한 피해자들은 A씨의 요구를 거절하면 ‘철도 관련 회사는 취업 정보가 부족한데 A씨가 가진 족보를 못 받으면 취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압박을 느꼈습니다. 수년간 갑질과 성비위가 이어져 피해자가 수십명에 이를 거란 분석이 나옵니다.피해자 2명 직접 경찰에 고소장 접수…의왕서 이송1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와 성동경찰서는 강요 등 혐의로 고소된 A씨에 대한 사건을 최근 경기 의왕경찰서로 이송했습니다. 취업준비생 김모(30)씨는 “지난달 25일 A씨와 상담에서 ‘쓴 소리를 해도 좋다’고 말하자, 갑자기 ‘욕실로 가서 속옷을 제외한 옷을 모두 벗고 찬물 샤워를 하는 모습을 나에게 비춰 보여달라’고 강요했다”며 지난 7일 성동서에 고소장을 접수했습니다. 서울 강남경찰서. 오장환 기자 김씨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A씨가 철도 분야의 모든 기출 문제를 갖고 있다 보니 강요에 따르게 됐고 엄청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B씨도 지난 1일 강남서에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B씨는 “2023년 4월 무렵 A씨가 ‘이름, 나 애니메이션 ‘플로우’ 스틸컷. 배급사 제공 “부드럽고 감미로운 여름비처럼 여인은 장소의 고요에 잠겼다. 사방의 모든 것이 고요하고 그 고요가 나무들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요는 나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의 ‘세계숲’)무시무시하고 구슬펐던 일주일, 땅과 하늘 사이가 온통 비명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최악의 산불 피해를 기록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를 집어삼켰다. 오랜 시간 숲을 키워온 흙과 물, 그 이름을 다 알 수도 없는 나무와 풀과 벌레, 그곳에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동물과 인간, 그리고 인간이 쌓아 올린 생활과 문화의 흔적까지. 신비로운 우주였던 숲은 이제 검고 마른 잿더미가 되었다.불붙은 숲의 울음소리를 피해 도망친 극장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물의 애니메이션을 만났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플로우’다. 이 작품은 인류가 자취를 감춘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한다. 문명의 잔해만 남은 세상에는 여전히 다종다양한 생명들이 활기차게 대지를 누비고 있다.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놀라운 속도로 대홍수가 닥쳐온다. 동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한 척의 배에 올라타게 된다. 다정한 카피바라, 경계심 많은 고양이, 도구에 집착하는 여우원숭이, 활달한 골든리트리버, 그리고 우아하고 강인한 새 뱀잡이수리. 서로 다른 성격과 습성을 지닌 이들이 재난 시대의 동반자가 되어 표류한다.‘플로우’에선 동물이 인간의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라이온 킹’이 선보이는 소년의 성장담이나 ‘주토피아’의 인간 사회 풍자처럼, 동물에게 인간의 성질을 입혀 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던, 대중적인 애니메이션 우화들과는 다른 선택이다. ‘플로우’는 이런 익숙한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동물의 이야기’이기를 꿈꾼다. 동물의 고유한 몸짓, 소리, 눈빛 그리고 행동만으로 그들의 시간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것이다.덕분에 나는 이 작품을 인간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으려는 충동을 누르고 재난을 겪는 동물들의 이야기 그 자체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인간의 침묵이 강렬한 메시지를 구현하는 형식이 된 셈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